본문 바로가기 주 메뉴 바로가기 사이트이용안내 바로가기



사랑과 혁명의전사 - 김남주생가
사진크게보기

사랑과 혁명의전사 - 김남주생가

  • 위치 : 해남군 삼산면 봉학길 98
  • 문의
    문화관광과 문예관광담당 / 관광안내: 061-532-1330 / 061-530-5915
    // 김남주 게스트 하우스 사이트: http://cafe.daum.net/kimnamjuhouse
찾아오시는 길
빠른길찾기
소개
김남주 생가는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 에 위치하고 있다. 삼산면 봉학리 에서 이땅의 전형적인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70년대 격변의 시기에 전남대 영문과에 입학 3선개헌 반대, 교련반대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70년대 유신독재체제와 맞서 칼날같은 시를 쏟아내고 민주주의로 향하던 80년대를 옥중에서 보내면서도 '나의 칼 나의 피', '조국은 하나'등의 옥중시집을 발표해 현실비판의 당당한 문학지평을 열어왔다. 그의 길지 않은 삶과 문학의 제적에는 70, 80년대 우리 정치사회사의 굴곡과 음영이 그대로 새겨져 민족문학의 큰별로 낮고 어둡게 살아가는 민중들의 앞길을 밝혀 주었다.

김시인은 48년의 지난 세월동안 반외세 반독재투쟁 절규하는 시와 자기의 시같은 삶으로 맞서왔다. 그러다 여긴 투옥 생활을 끝낸 88년에는 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이사, 한국민족예술인 총연합 이사 등을 맡아 죽는 날까지 민족문화운동에 힘을 쏟았다.
나는 나의 시가 오가는 이들의 눈길이나 끌기 위해 최신유행의 의상걸치기에 급급해 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나는 나의 시가… 호사가의 장식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는 그의 시처럼 김남주의 시는 그가 함께 해야할 민중들의 삶속에서 등대처럼 반짝이는 현신타계의 힘이었던 것이다.
불의한 시대인 70년대에 유신독재체제와 맞서 그는 행동으로 뿐 만아니라 칼날 같은 시를 쏟아냈으며 민주주의로 향하던 80년대를 옥중에서 보내면서도 '나의 칼 나의 피', '조국은 하나'등의 옥중시집을 발표해 현실비판의 문학지평을 열었다. 그의 짧은 삶과 문학 속에는 70, 80년대 우리 정치. 사회사의 굴곡과 음영이 그대로 새겨져 있어 민족문학의 큰 별로 낮고 어둡게 살아가는 민중들의 앞을 밝혀 주었다.
김남주시인은 48년의 세월동안 반외세 반독재 투쟁의 절규를 시와 삶으로 맞서왔다. 그는 투옥 생활을 끝낸 88년에는 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이사, 한국민족예술인 총연합 이사 등을 맡아 민족문화운동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그는 석방 이후 옥중투쟁에서 얻은 지병(췌장암)으로 투병하다가 94년 2월 13일, 불과 마흔 아홉의 나이로 부인 박광숙 여사와 아들 토일 군을 남겨 둔 채  생을 마감했다.
그가 남긴 470여편의 시 가운데 300여 편이 옥중에서 쓴 시이며, 그의 옥중시는 80년대 한국시의 한 절정을 이루었다. 시집으로는 『진혼가』, 『나의 칼 나의 피 』,『 조국은 하나다』, 『솔직히 말하자』,『사상의 거처』,『이 좋은 세상에』『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등과 시선집『사랑의 무기』, 『저 창살에 햇살이1.2』,『꽃 속에 피가 흐른다』등 여러 권이 있으며, 제3회 윤상원문화상 수상, 제9회 신동엽창작기금, 제6회 단재상 문학부문 수상. 영랑시문학상 등을 수상 했다.

* 김남주생가 게스트하우스 체험
김남주 생가는 2014년 12월 방 3개를 게스트하우스로 리모델링해 운영에 들어갔으며 예약은 개설된 인터넷 다음카페 김남주생가 게스트하우스:http://cafe.daum.net/kimnamjuhouse 에서만  받는다. 게스트하우스 운영은 김남주기념사업회(회장 김경윤)에서 맡았다
요금은 1인 1박시 2만원.
3인 이상 가족이나 단체에서 방 1칸을 전체 이용할 때에는 5만원.
게스트하우스에는 신영복 선생이  쓴 '민족시인 김남주 생가' 현판과시인이 생가에는 신영복선생이 직접 쓴 <민족시인 김남주생가>현판과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의 표구작품이 걸려 있다.
김남주 대표작
*자유
만인을 위해 내가 노력할 때
나는 자유이다
땀 흘려 힘껏 일하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싸울 때 나는 자유이다
피 흘려 함께 싸우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몸부림칠 때 나는 자유이다
피와 땀과 눈물을 나눠 흘리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사람들은 맨날
밖으로는 자유여, 형제여, 동포여! 외쳐대면서도
안으로는 제 잇속만 차리고들 있으니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도데체 무엇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제 자신을 속이고서

*사랑은
겨울을 이기고 사랑은
봄을 기다릴 줄 안다
기다려 다시 사랑은
불모의 땅을 파헤쳐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리고
천년을 두고 오늘
봄의 언덕에
한 그루 나무를 심을 줄 안다

사랑은
가을을 끝낸 들녘에 서서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
너와 나와 우리가
한 별을 우러러 보며.....

*참고문헌: 해남의 시문학사, 한국문학을 빛낸 해남의 시인들, 해남(한반도의 땅끝을 찾아서), 해남군 문화공보실, 해남군 1996. 땅끝해남,  정윤섭 향지사, 1997. 해남군사, 해남의얼, 해남의문화유산,
사진갤러리
  • 김남주 생가.jpg
  • 김남주 생가2.jpg
  • 김남주.bmp
  • 11-김남주 문학제.jpg
  • 이미지 없음

이전

다음

목록보기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해남군 QR코드
담당자
  • 문예관광팀 진정연 ☎ 061-530-5061-530
갱신일자
2018-04-20
공공누리 마크(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