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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문학의산실 -  수정동, 금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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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문학의산실 - 수정동, 금쇄동

  • 위치 :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구시리 산181 외
  • 문의
    문화관광과 문화재담당: 061-530-5227 / 관광안내:061-532-1330 / 061-530-5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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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 고산문학의 산실 -  수정동과 금쇄동
고산은 자신의 은둔생활을 철저히 자연 속에 몰입시킨다. 그가 이러한 자연 속에서 자신의 세계로 조영한 곳이 수정동과 금쇄동이다. 고산문학의 주된 배경은 자연이다.이중 어촌을 배경으로 한 것이 보길도에서 지었던 어부사시사이고 산중인 임천(林泉)의 자연을 배경으로 한 것이 현산면 구시리 금쇄동에서 지었던 「산중신곡」과 「금쇄동기」라고 할 수 있다.
고산은 크게 천연의 순수자연과 순수자연에 인공을 가한 조형자연을 선호의 대상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고산이 보길도에서 부용동원림을 조영하고 현산면에 금쇄동원림, 수정동원림 등을 경영한 것은 이러한 조형자연의 구축이라고 할 수 있다.
고산의 대표작인 산중신곡은 이곳 금쇄동과 수정동 그리고 문소동 등에서 원림을 경영하며 산거생활의 흥취를 노래한 것이어서 고산의 중요한 문학처이다.
고산은 이곳에서  은거생활을 하며 산중인 임천(林泉)의 자연을 배경으로 한 작품 산중신곡 19수와 속 산중식곡 2수, 기타 5수 등 모두 26수의 시가를 남긴다. 또 금쇄동기에 22개의 지명을 남기는데 모두 그에 합당한 의미를 붙여 이름을 지었다.


* 고산의 묘와 이의신 이야기
고산의 묘와 관련해서는 고산과 인척관계였던 이의신과 관련한 전설이 있다. 그가 잡은 묘터는 당시 유명한 지관이었던 이의신이 잡아놓은 터였다고 한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풍수리지에 능한 이의신은 이 터를 잡고 묘자리로 쓰기 위해 나귀를 타고 이곳을 왕래했다. 그런데 이를 이상히 여긴 고산이 따라가 보니 과연 명당자리였다. 그래서 어느날 몰래 이 묘자리에 물을 부어 놓아 물길(수맥)이 있는 줄 알고 묘자리를 포기하도록 꾀를 써 묘를 차지했다는 이야기다.
이의신은 조선왕조실록에도 자주 등장하는 유명한 풍수가로 그가 유명한 지관이 된 이야기가 마산면 송석리 일대에서 생긴 전설로 전해 내려온다.

* 오우가(五友歌) - 고산 윤선도
                                 
내 벗이 몇인가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등산에 달 오르니 그 더욱 반갑구나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구름빛이 맑다하나 검기를 자주한다
바람 소리 맑다 하나 그칠 때가 많은도다
맑고도 그칠 때 없기는 물뿐인가 하노라

꽃은 무슨 일로 피면서 쉬이지고
풀은 어이하여 푸르는 듯 누르나니
아마도 변치 않음은 바위뿐인가 하노라

더우면 꽃이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소나무야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느냐
지하의 뿌리 곧은 줄을 그것으로 아노라

나무도 아닌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 시키며 속은 어이 비었느냐
저렇고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작은 것이 높이 떠서 만물을 다 비치니
밤중의 광명이 너만한 이 또 있느냐
보고도 말 아니하니 내 벗인가 하노라

*참고자료 : 땅끝해남, 고산유고, 고산유선도, 해남의 문화유산, 해남 정윤섭, 향지사, 1997.해남윤씨 500년요람지 녹우당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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