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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도 종가 문적 - 금쇄동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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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도 종가 문적 - 금쇄동집고

  • 위치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녹우당길 135
  • 문의
    문화관광과 문화재담당 : 061530-5856 / 관광안내: 061-530-5915 /061-532-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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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윤선도 종가 문적-금쇄동집고(尹善道 宗家 文籍-金鎖洞集古)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시조작가인 고산 윤선도(1587∼1671) 선생이 직접 손으로 쓰거나, 엮어 펴낸 수적들 가운데 하나이다.

윤선도는 8살되던 해에 큰아버지에게 입양되어 해남으로 내려가 살았다. 20세에 승보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1616년 성균관유생으로서 집권세력을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함경도로 유배되었다. 벼슬을 버리고 내려온 후에는 조상이 물려준 엄청난 재산으로 정치와는 관계없는 보길도의 부용동과 새로 찾은 금쇄동에 여러 정자와 각을 지어놓고 풍류를 즐기며 살았다.
이 책은 선생이 금쇄동에서 은거생활을 하면서 도연명, 이백, 백거이, 의응물 등 중국시인들의 시구를 모아엮어 손수 쓴 것과, 자기가 지은 한시(漢詩)와 우리말로 쓴 단가(短歌)를 합하여 첩으로 꾸민 것이다.

고산 윤선도 선생의 시세계를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의 국문학을 연구하는데에도 귀중한 자료이다.

윤선도(尹善道)가 금쇄동(金鎖洞)에서 은거 생활을 하면서 도연명(陶淵明)·이백(李白)·백거이(白居易)·위응물(韋應物)등 중국시인(中國詩人)들의 시구(詩句)를 모아서 집구고시(集句古詩)를 엮어 자필(自筆)로 쓴 것과, 또 자기가 지은 한시(漢詩)와 우리말로 쓴 단가(短歌)(증반금일수(贈伴琴一首)·산중속신곡이수(山中續新曲二首))를 합하여 첩(帖)으로 꾸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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