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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대흥사 대웅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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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대흥사 대웅보전

  • 위치 : 전라남도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
  • 문의
    문화관광과 문화재 담당 : 061-530-5856 / 관광안내 : 061-532-1330 /061-530-5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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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해남 대흥사 대웅보전 (大興司 大雄寶殿)
해남 대흥사 대웅보전은 조선중기의 다포계 건축이나 정면의 화려한 용두장식 등 여러 장식요소가 다분히 혼합되어 있는 등 조선후기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중정식 가람배치의 전형을 보여 주며, 그 중심의 위치에 서서 주변 경관에 적극적으로 조화되는 이른바 산사의 모범적인 사례로 등장한다.  건물은 정면5칸 측면3칸의 다포계 팔작지붕 건물이다

* 대웅보전 자세히보기
대흥사 대웅보전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96호로 지정 되었다.
「대둔사지」 권2와 <대둔사대 웅전중건기>에 의하면 1667년(현종8)에 심수대사(心粹大師)에 의하여 3년 만에 중건되었다 한다. 지금의 건물은 1899년(광무3)에 대웅전이 서있던 북원 전체가 불에 타자 1901년(광무 5) 법한(法翰)대사가 화주가 되어 새로 지은 것이라 한다.
취운혜오(翠雲慧悟)가 1901년에 쓴 <대웅보전중수기>에 의하면 1899년(광무3년, 고종-1863-1907재위) )10월14일에 화재로 소실되고,1900년에 다시 대대적 중건불사로  유시(酉時)에 서상 실에서 일어난 불로 대웅보전이 전소 되 육봉 법한(六峰法翰)대사가 대화주가 되고 당시 관찰사 이웅열(尹雄烈) 이 대시주가 되어 중건 작업이 이루어졌다. 당시  육봉대사는 황실의 후원을 얻기 위해 서울을 12번이나 왕래 하며 중수했다.

대웅보전 편액은 조선후기의 명필인 이광사가 쓴 것이다. 자유분방함을 느끼게 하는 행서체의 글씨다.
대웅보전 안에는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아미타·약사여래가 좌우로 협시한 목조삼세불을 모시고 있다, 탱화는 1901년(광무5)에 봉안된 것으로, 불화로는 삼세후불탱화를 비롯해서 감로탱화·,삼장탱화,·제석천룡탱화,·칠성탱화가 모셔져있다.  대웅보전 문짝은 빗살 격자무늬에 꽃무늬를 새겼으며, 문짝의 하단을 2단으로 나누어서 화려하게 치장한 '안상'과 '태극무늬'가 돋보인 조각상이다.
대웅보전은 귀기둥을 제외한 전면의 기둥 상부에는 용두를 새기고, 쇠서에도 연꽃을 새겨 조선후기의 불교건축 양식을 보여주고 있는데. 건물 전면에는 각 칸마다 빗살무늬의 2분합문을 달았다.
특히 살창의 밑 부분에 그려진 태극문양이 아름답다.
대웅보전 안에 있는 나무기둥을 보면 크게 휘어 올린 대들보는 자연목을 그대로 사용한 옛 장인들의 천연스럽고 소박한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 대흥사 대웅보전 설화
대흥사 대웅보전은 내부의 건축미와 삼장탱화와 영산회상도의 불화가 특이하다. 또  조선시대 명필로 알려진 추사김정희와 원교이광사 등 조선후기 다양한 명필들의 글들을 볼 수 있으며 삼존불의 석가모니 미소가 특히 아름답다.

* 황실의 후원을 받은 대웅보전 중건 불사(大雄寶殿 重建佛事)
대웅보전은 1900년에 다시 대대적인 중건 불사(佛事)가 이루어진다.
누군가의 실수로 1899년 10월 서상실(西上室)에서 시작된 큰불로 대웅전이 전소되었기 때문이다.
취운혜오(翠雲慧悟)가 1901년 지은 ‘대웅보전 중수기’에 의하면, 이때 대웅보전은 육봉 법한(六峰法翰)대사가 대화주가 되고, 당시 관찰사 윤웅열(尹雄烈)과 해남군수 이용우(李容愚)가 대시주가 되어 중건 작업이 이루어졌다. 당시 대웅보전의 중건 불사를 책임 맡고 있었던 육봉 대사는 황실의 후원을 얻기 위해서 서울을 12번이나 걸어서 왕래했다고 한다. 대사의 이런 정성이 갸륵했던지 엄황비는 어린 영친왕을 위해서 기꺼이 중건불사에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 원교, 추사 글씨의 일화가 전한다
대웅보전 현판의 글씨는 당대의 명필 원교이광사(1705~1777)의 명필이다.
추사 김정희(1786~1856)는 1840년(헌종6) 제주도로 귀양 가는 길에 이곳 대흥사에 기거하고 있는 초의선사를 만나기 위해 대흥사에 들렀다. 그리고 이광사가 써준 대웅전 현판을 보고 조선의 필체를 망가뜨리는 글씨라며 직접 자신이 대웅보전의 현판을 써주고 붓을 잡은 김에 왼편 백설당에 ‘무량수각(無量壽閣)’의 현판을 써주었다고 하는 일화가 전해온다. .
그 후 추사는 유배지에서 깨우침을 얻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대흥사에 들렀다. 그리고 이광사의 현판 글씨가 아직도 보관되어 있는 것을 알고 자신의 아집을 사과하며 다시 내다 걸게 하였다고 한다.
당시 이곳 대흥사에는 추사와 절친하였던 초의선사가 기거하고 있어 추사 김정희와의 교류가 이어지며 이웃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던 다산 정약용과도 교류 관계가 이어져 대흥사를 중심으로 한 이들 석학들의 차와 학문․시․서화 등 예술의 교류는 한때 새로운 문화의 꽃을 피우게 한다.

* 해남의 문화유산
해남군의문화유적길라잡이(김승기), 땅끝해남(2003,정윤섭), 해남의문화유산(2008), 해남군의 문화유적, 해남군사, 한반도의 땅끝을 찾아서(1996,해남), 대둔사지, 대흥사(대원사), 대흥사역사와문화등.
문화재 정보
종 목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96호  
명 칭 : 해남 대흥사 대웅보전 (大興司 大雄寶殿)  
분 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사찰  
수량/면적 : 1동
지정(등록)일 : 2008.09.19
소 재 지 : 전남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798 대흥사  
시 대 :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 대흥사
관리자(관리단체) : 대흥사
사진갤러리
  • 대흥사삼존불.jpg
  • 대흥사 여름.jpg
  • 대흥사겨울.JPG
  • 대웅보전현판.JPG
  • 50-박인수-산사의 꽃무릇(대흥사).jpg
  • 63-민현숙-대흥사 설경.jpg
  • 대흥사대웅보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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