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 메뉴 바로가기 사이트이용안내 바로가기



표충사
사진크게보기

표충사

  • 위치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대흔사길 400
  • 문의
    문화관광과 문화재 담당 : 061-530-5856 / 관광안내 : 061-532-1330
찾아오시는 길
빠른길찾기
소개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운 서산대사(1520∼1604)를 모시는 사당이다 현재 그의 제자인 유정과 처영의 영정도 함께 모시고 있다.

서산대사는 9세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이듬해 아버지마저 돌아가시자 서울에 올라와 절에 기거하며 글과 무예를 익혔다. 그러던 중 영관대사의 설법을 듣고 불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훗날 스스로 머리를 깎고 출가하였다.
명종 4년(1549)에는 승과에 급제하고 벼슬을 제수 받았으나 사양하고 유명한 산을 돌아다니며 후학들을 만나 친절히 지도해 주었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는 늙은 몸을 이끌고 전국의 승려들에게 격문을 돌려 나라를 지키는데 앞장서도록 하였다. 묘향산에서 1,500여명, 그의 제자인 유정은 금강산에서 700여명, 처영은 지리산에서 1,200여명의 승병을 모집하여 순안, 평양 등지에서 왜구를 토벌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전쟁 이후 그는 승려로서 최고의 존칭과 정2품 당상관 작위를 받았으며 묘향산에서 선조 37년(1604) 입적하였다.

이 건물은 조선 정조 12년(1788)에 세웠으며 앞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이곳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승병을 일으켜 왜적 격퇴에 앞장선 서산대사(西山大師)(1520∼1604)를 받드는 사액사당(賜額祠堂)이다. 대사의 속성(俗姓)은 최씨(崔氏), 자(字)는 현응(玄應), 호(號)는 청허(淸虛)·서산(西山), 본관(本貫)은 완산(完山)이다. 어려서 고아가 되어 숭인(崇仁) 장로에게서 중이 되어 이후 선가(禪家)의 법(法)을 체득하였다.

30세에 선과(禪科)에 합격한 후 대선(大選), 양종판사(兩宗判事)를 역임하였다. 선조(宣祖)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8도(八道) 16종(十六宗) 도총섭(都摠攝)이 되어 문인(門人)인 유정(惟政), 처영(處英)과 함께 왜적 격퇴에 커다란 공을 세웠다.
이 사우(祠宇)는 정조(正祖) 12년(1788)에 대사의 높은 공에 비해 대사는 주향(主享)하는 곳이 없음을 안타깝게 여긴 문인(門人)들의 건의에 따라 건립되었다.
나라에서도 그 공을 기리는 뜻에서 표충(表忠)이라 사액함과 동시에 관(官)에서 치제(致祭)토록 하였다. 건물은 장대석(長臺石) 기단(基壇) 위에 정면 3칸의 주심포(柱心包) 양식의 맞배지붕을 한 목조와가(木造瓦家)이다.
문화재 정보
종 목 : 전라남도  기념물  제19호  
명 칭 : 표충사 (表忠祠)  
분 류 :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인물기념/ 사우  
수량/면적 : 일원
지정(등록)일 : 1976.09.30
소 재 지 : 전남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산16  
시 대 :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 대흥사
관리자(관리단체) : 대흥사
사진갤러리
  • 표충사조사전(19호).jpg
  • 표충사.jpg
  • 표충사사당(19호).jpg
  • 표충사 (12).JPG
  • 표충사현판.JPG

이전

다음

목록보기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해남군 QR코드
담당자
  • 문예관광팀 진정연 ☎ 061-530-5061-530
갱신일자
2018-05-03
공공누리 마크(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