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향토문화유적제 6호
성산 만의총은 정유재란 때 옥천평야인 대교뜰 싸움에서 순절한 의병장 윤견(1549~1597),윤검(1552~1597), 윤륜, 윤신 형제 등 당시 왜군과 함께 싸우다 숨져간 수백명의 의병들을합장한 묘이다.
만의총은 성산 사거리에서 영춘으로 통하는 길 좌우편에 현재 3기가 남아있다. 직경 10m, 높이 4m 가량의 크기로 보아 이곳에 2~300명가량의 시신이 합장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왜군과 의병들이 맞서 싸웠던 곳은 성산마을 앞 벌판인 ‘대교뜰’ 이었다. <호남절의록>에는 대교뜰 싸움의 의병장으로 윤견·윤검·윤신 등이 기록되어 있으며, 윤견·윤검 형제는달마산에서 기병하여 이 대교뜰 싸움을 거쳐 장흥석대 싸움에서 순절하였고, 윤륜·윤신 형제는 병치재에서 기병하여 대교뜰 싸움에서 순절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곳에서 싸움을 하던 의병들은 어란진에 상륙하여 북상한 왜군이 합세하자 밀고 밀리는 치열한 싸움으로 인해 수백명의 의병들이 희생당하는데 이들 의병들의 시신을 거두어 합장한 것이 지금의 만의총이다.
만의총은 최근 지난 2006년에 1호분을, 2008년에 2호분을 발굴한 결과 삼국시대의 고분으로 밝혀져 만의총에 대한 성격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성산 만의총은 정유재란 때 옥천평야인 대교뜰 싸움에서 순절한 의병장 윤견(1549~1597),윤검(1552~1597), 윤륜, 윤신 형제 등 당시 왜군과 함께 싸우다 숨져간 수백명의 의병들을합장한 묘이다.
만의총은 성산 사거리에서 영춘으로 통하는 길 좌우편에 현재 3기가 남아있다. 직경 10m, 높이 4m 가량의 크기로 보아 이곳에 2~300명가량의 시신이 합장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왜군과 의병들이 맞서 싸웠던 곳은 성산마을 앞 벌판인 ‘대교뜰’ 이었다. <호남절의록>에는 대교뜰 싸움의 의병장으로 윤견·윤검·윤신 등이 기록되어 있으며, 윤견·윤검 형제는달마산에서 기병하여 이 대교뜰 싸움을 거쳐 장흥석대 싸움에서 순절하였고, 윤륜·윤신 형제는 병치재에서 기병하여 대교뜰 싸움에서 순절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곳에서 싸움을 하던 의병들은 어란진에 상륙하여 북상한 왜군이 합세하자 밀고 밀리는 치열한 싸움으로 인해 수백명의 의병들이 희생당하는데 이들 의병들의 시신을 거두어 합장한 것이 지금의 만의총이다.
만의총은 최근 지난 2006년에 1호분을, 2008년에 2호분을 발굴한 결과 삼국시대의 고분으로 밝혀져 만의총에 대한 성격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사진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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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예관광팀 진정연 ☎ 061-530-5061-530
- 2018-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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