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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죽헌 박백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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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죽헌 박백응

  • 위치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해리 (해촌서원)
  • 문의
    문화관광과 문예관광팀 : 061-530-5919 / 관광안내:061-532-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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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취죽헌 박백응은 해남읍 금강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 문하에서 성리학의 진리와 인격 도야에 힘썼다.
백응은 30세 때 사마시에 급제했으며, 학덕이 높았던 그는 조선 명종 당시 진원현감(珍原縣監) 등 목민관으로 있으면서 세정에 영합하지 않고 소임을 다하다가 벼슬에 뜻이 없어 낙향해 부춘동(富春洞)에 정사(精舍)를 세우고 후진 양성에 힘을 썼다. 취죽헌 박백응은 석천 임억령의 제자이자 석천은 박백응의 외숙이다. 박백응은 진원 현감을 지낸 후 귀향해 해리 부춘동에 서재를 세우고 후학을 양성한 인물이며 문장이 뛰어나 해남육현(海南六賢)의 한 사람으로 추앙 받고 있다. 취죽헌 박백응이 살았던 금강골 아래는 부춘동(富春洞)이라 부르며 그의 서재도 부춘재라 명명했다.
박백응은 여러 아들을 두었는데 장손인 박희길(朴希吉)이 원호리로 와 살면서 후손들이 번창해 살게됐으며 취죽헌으로 시작한 무안 박씨는 해남 곳곳에 퍼져 가문을 형성한다.
취죽헌의 장남인 회길은 황산면 국사봉 아래 늘원에 터를 잡았고 차남 영길은 마산 시목(감나무골)에, 삼남 대길은 마산 장촌, 넷째 성길은 해남 안동에 터를 잡고 누대를 살면서 이 고장의 지도자들을 많이 배출하게 됐으며. 동생 중응도 일찍부터 석천 임억령 문하에서 수업한바 있고 시를 잘했다.

[부춘재(富春齋)]
부춘재는 해남현 치소 금강산하 해리 부춘동에 있었던 19칸 큰 건물로, 해남읍의 대표적인 서당이다.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무안박씨 족보와 해촌사 사적기를 참조해 보면 구한말 서당이 폐쇄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 이 서당 자리에 있던 건물이 철거된 후, 무안박씨 문중에서 그 옆 산비탈에 제각을 이축하고 부춘재라 하였다.

유적지: 해천사 배향
참고문헌
내고장 얼, 해남군편찬위원회, 해남군. 병자호란과 조선, 해남의 시문학사, 한국문학을 빛낸 해남의 시인들,  해남역사문화자원 발굴조사(2012), 해남(한반도의 땅끝을 찾아서), 해남군 문화공보실, 해남군, 1996.해남(문화유적), 정윤섭, 향지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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