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 메뉴 바로가기 사이트이용안내 바로가기



정충보국 - 정운장군
사진크게보기

정충보국 - 정운장군

  • 위치 :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대산리 534-1
  • 문의
    문화관광과 문화재팀: 061-530-5856 / 061-530-5915 / 관광안내: 061-532-1330
찾아오시는 길
빠른길찾기
소개
정운(1542-1592)은 해남군 옥천면 대산리에서 태어난 조선중기의 무장으로 본관은 하동(河東)이며 자를 차진이라 했다. 28세에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북방의 오랑캐를 무찌르는 공을 세우고, 웅천현감(熊川縣監), 삭녕군수를 거쳐 임진년에 녹도만호(鹿島萬戶)로 부임하여 임진왜란때 수군절도사 이순신의 선봉장이 되어 용맹을 날리다가 1598년 6월 50세를 일기로 부산 동래의 몰운대 싸움에서 적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이에 나라에서는 공의 전공을 높이 사서 병마절도사를 제수하고 녹도에 사당을 세웠으며 종일등훈(從一等勳)으로서 사액(賜額)을 내리었다.
또한 효종때 지금의 자리에 사당을 세웠고, 숙종(肅宗) 때 충절사(忠節祠)라 사액 하였으며 다시 정종(正宗)때에는 병조판서(兵曺判書)와 충장(忠壯)의 시호를 내렸다.

* 무장으로서의 성장
임진왜란때 이순신 장군의 참모로서 휘하 장병을 지휘한 인물로 옥천면 대산리 출신으로 당시 이순신 장군을 도와 위기에 처한 국난을 극복하고 나라와 민족을 구한 애국충신이다.
정운 장군은 1542년 9월 10일 공조판서 정응정의 맏아들로 태어났다.정운장군은 어려서부터 힘이세고 성품이 곧았으며 용맹스러웠을뿐 아니라 활쏘는 재주가 뛰어났다. 그는 7세때 큰칼에 '정충보국'이라는 칼 이름을 새겨 스스로 나라에 충성할 것을 맹세하였다.
28세때(1570년) 무과에 장원급제하여 우리나라와 만주의 국경지대 수비대 장교로 임명받아 그해 10월 두만강을 건너 침략한 외적 20여명과 맞서 싸워 전멸시키는 큰 승리를 거두었다.

* 임진란의 별은 가고
임진왜란시 부산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을 도와 싸우다 적의 총탄에 맞고 순국하였다. 1605년(선조38) 선원종 1등훈에 책하고 선조대왕께서는 병조판서(지금의 국방부 장관)에 추증하였으며,선조 41년에는 충신문을 건립토록 하였다.
현재 옥천면 대산리 충절사에 모셔져 있다

유적 : 해남군 옥천면 대산리 정운충신각 사당 /  삼산면 평활리 : 묘지
참고문헌
,해남역사문화자원 발굴조사(2012), 해남(한반도의 땅끝을 찾아서), 해남군 문화공보실, 해남군, 1996.해남(문화유적), 정윤섭, 향지사, 1997. 땅끝해남, 해남군의 문화유산 2008 등.
사진갤러리
  • noname14.jpg
  • 이미지 없음
  • 이미지 없음
  • 이미지 없음
  • 이미지 없음

이전

다음

목록보기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해남군 QR코드
담당자
  • 문예관광팀 최영훈 ☎ 061-530-5292-530
갱신일자
2018-04-22
공공누리 마크(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