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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의 박성룡

풀잎의 박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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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고향은/ 땅끝이었다./ 더는 나아갈 수가/ 없었다./ 한반도의 최남단,/ 해남반도, 그 중에서도/ 맨 꼬리인 화원반도,/그 너머는 땅끝이었다./ 더는 나아갈 수가 없었다.// 어디론가/ 가고 싶은 마음/ 바다 같고, 하늘같았지만/ 더는 나아갈 수가/ 없었다./  
- 하략 -  「고향은 땅끝」중에서    

땅끝 해남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땅끝과 함께 떠올리는 시가 박성룡의 「고향은 땅끝」이다. 물론 여기에서 시인이 말하는 ‘땅끝’은 현재 토말탑이 세워져 있는 송지면 ‘땅끝마을’과는 다르다. 그러나 한반도의 최남단 땅끝을 찾는 사람들이 이 시를 애송하는 것은 땅끝이라는 것이 공간적인 의미로서의 땅이 끝나는 마지막 지점을 의미한다거나 그곳을 지칭하는 지명으로서 의미만을 가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가고 싶은 마음’이 ‘깃발’이라면 그 깃발이 가리키는 곳은 더는 나아갈 수 없는 절박함과 마음속에 담긴 바다 같고, 하늘같은 간절함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곳이다. 시인의 삶이라는 것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박성룡(1932~2002)은 자연과 사물에 대한 근원적 통찰을 추구하며 한국 문학사에서 순수 서정시의 정통을 형성하는데 기여한 시인이었다.
그는 1932년 전남 해남군 화원면 마산리에서 부 박노율(朴盧律)과 모 손길당(孫吉唐)의 2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살길을 찾아 일본에 건너갔던 아버지가 해방이 되어 귀국한 후, 하는 일 없이 소일하며 술에 취해 살던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너무 허망하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의 시적 정서의 토대가 된 감성적 기질은 그런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보인다.
어린 시절을 조그마한 어촌에서 보내고, 철이 들 무렵 광주로 이사하여 초등학교부터 광주에서 공부를 했으며, 광주서중, 광주고를 거쳐 중앙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중학 시절 박성룡은 캠퍼스와 이젤을 들고 교외에 나가 풍경화를 그리기에 몰두한 화가지망생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의 그림 그리기 체험은 그의 훗날 그의 시에 영향을 주어 사물에 대한 통찰력과 시적 이미지의 능숙한 사용을 가능하게 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그가 문학청년기를 보낸 1950년대를 전후한 기간 동안 광주에는 피난 와 있던 서정주, 김현승 시인의 문하에서 사사를 받으며, 강태열, 정현웅, 박봉우, 윤삼하, 장백일, 박이문 등과 함께 시동인지『零度』을 간행하면서 시적 역량을 축적하였다. 이들은 광주문단을 풍성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1956년 『문학예술』지에 조지훈, 이한직의 추천을 받아 「화병정경(花甁情景)」 「교외(郊外)」 등으로 등단하였다. 그는 참신한 언어와 짜임새 있는 구조로 무장한 새로운 서정시로 시단에 새 바람을 일으키며 등단하여, 전통적인 서정시인과는 다른 신서정을 보여준 작가로 평가받은 60년대 대표적인 시인 중 한 사람이었다. 성찬경, 박희진, 이창대, 박재삼과 함께 <60년대 사화집>의 멤버로도 활동하였다.
그 후 박성룡은 출판사(신탱야사, 사상계)를 거쳐 오랜 기간  《민국일보》, 《한국일보》, 《서울신문》」등을 전전하며  30여년을 언론사에서 봉직하다 정년퇴임하였으며,만년에 시작에 몰두하다  2002년 7월 27일 오전 경기도 수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하셨다.
그는 등단작 「교외」 외에도 대표작으로 「처서기」,「꽃상여」, 「백목련」,「양귀비꽃」「동백꽃」 등이 있으며, 교과서에 실린 「과목」,「풀잎」등으로 유명하다.
시집으로는 『가을에 잃어버린 것들)』(삼애사,1969년), 『춘하추동』(민음사,1970년),『동백꽃』(신라출판사,1977), 『휘파람새』(서문당,1982) , 『꽃상여』(전예원,1987)』, 『고향은 땅끝』(문학세계사,1991)』 등과 시선집 『풀잎』(창착과비평사,1998), 산문집『시로 쓰고 남은 생각들』(민음,1976)』등이 있으며,  전남도 문화상(1957년), 현대문학상(1964년), 시문학상(1982년), 호남문학상(1986년), 국제펜클럽한국본부문학상(1989년) 등을 수상했다.
□ 풀잎 2 - 박성룡 대표작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하고 그를 부를 때는,
우리들의 입 속에서 푸른 휘파람 소리가 나거든요.  

바람이 부는 날의 풀잎들은
왜 저리 몸을 흔들까요.
소나기가 오는 날의 풀잎들은
왜 저리 또 몸을 통통거릴까요.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 '풀잎' 하고 자꾸 부르면,
우리의 몸과 맘도 어느덧
푸른 풀잎이 돼버리거든요.

고향은 땅끝
더는 나아갈 수가 없었다
한반도의 최남단
해남반도, 그 중에서도
맨 꼬리인 화원반도
그 너머는
땅끝이었다
더는 나아갈 수가 없었다
어디론가
가고 싶은 마음
바다 같고, 하늘 같았지만
더는 나아갈 수가
없었다

가고 싶은 마음은
깃발이었다
다만 바닷바람에 찢어지는 깃발이었다
찢어져서 나부끼는
깃발이었다
더는 나아갈 수가
없었다.
참고문헌
해남의 시문학사, 한국문학을 빛낸 해남의 시인들,
해남(한반도의 땅끝을 찾아서), 해남군 문화공보실, 해남군, 1996.
해남(문화유적), 정윤섭, 향지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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