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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조별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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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조별묘

  • 위치 :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송천길 62
  • 문의
    문화관광과 문화재담당: 061-530 -5856/ 해남군 관광안내: 061-532-1330 / 061-530-5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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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나라에서 조선구원군 도독으로 왔던 명나라장군 진린을 향사하는 곳이다.

진린은 군선 500척을 이끌고 고금도, 녹도, 금당도, 노양포 등에서 이충무공과 왜적을 방어하였다. 그는 이충무공이 노량에서 전사하자 제문을 짓기도 하였고, 고금도에서 1598년 출정할 때 견몽한 중국군신 관운장을 모시는 관왕묘를 세우기도 하였다.
이 곳이 진린과 관련된 연유는 진린의 손자인 진영소(1644년 ∼ ?)가 명이 멸망하면서 진린의 유지에 따라 광주로부터 관왕묘가 있는 강진 고금도에 이주하여 거소를 구석리라 한데서부터 비롯된다.

그 뒤 진영소의 아들인 석권과 윤권은 구석리에서 다시 해남의 현 위치로 이거하여 명의 유민이란 뜻으로 황조동이라 하였고, 1679년(숙종5년) 진린을 모시는 단을 만들어 제향하다가 1871년(고종8년)에 별묘를 건립하였다. 그 후 1960년에 소슬 삼문을 신축하였고, 1976년과 1983년에 중, 개수하여 현재에 이른다.
현태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규모로 고태(高台)위에 지은 맞배집이고 4누각의 추녀는 활주로 받쳤으며 소슬 3문이 있다.
한편 고금도의 관왕묘는 1684년(숙종 10년) 관찰사 이사명(1647년 ∼ 1689년)이 중수하였고, 1710년(숙종 36년)에는 원임 영의정 이이명(1658년 ∼ 1722년)이 소청하여 조정에서 춘추로 관리를 보내 향사하였다. 1764년(영조 40년)에는 절도사 신찬이 처환으로 하여금 관용묘 옆에 사우를 짓게 하여 좌우에 각각 진린과 이충무공을 분양케 하였다. 황조별묘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규모로 고태위에 지은 맞배집이고 4누각의 추녀는 활주로 받쳤으며 소슬 3문이 있다.

*  산이면 소재지에서 버스로 20분 이후 도보 5분 (1일 5회 운행)
참고문헌
*참고자료: 해남군의문화유적길라잡이(김승기), 땅끝해남(2003,정윤섭), 해남의문화유산(2008), 해남군의 문화유적, 해남군사, 한반도의 땅끝을 찾아서(1996,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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