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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사 목조석가여래삼불 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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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사 목조석가여래삼불 좌상

  • 위치 : 해남군 화원면 절골길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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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의: 문화관광과 문화재담당 : 061-530-5227 / 관광안내 : 061-532-1330 / 061-530-5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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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 서동사 대웅전 목조삼존불좌상 (보물 제 1715호)
서동사는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신라 진성여왕(887~896년)대에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이 창건한 사찰로 전해오고 있다.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대부분 건물이 불탔으나 대웅전만은 칡뿌리 등이 건물을 감싸고 있어 화를 면하였다고 하며 이로 인해 당시에는 갈천사(葛天寺)로 불리었다고 한다. 그 후 대웅전은 고종 7년(1870)에 의철, 진일, 정기스님 등이 중수하였다.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삼존불은 모두 목조로 중앙의 본존불은 상호가 원만상으로 눈썹이 상징적으로 호형을 그리며 위로 뻗쳤고 눈은 반쯤 뜬 눈이지만 약간 숙인 얼굴 때문에 정면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모습이다.
또한 코는 분명하고 입 또한 적당히 다물고 있어 얼굴 전체는 경직되지 않고, 귀는 큼직한 귓부리가 밑으로 쳐져 있으며 머리는 나발이다. 의문(衣紋)은 도식적인 표현으로 간략화 되고 무릎은 결가부좌를 하였는데 가슴 밑에서 내의자락이 연화형인 점이 특이하다. 조성 시기는 조선후기작으로 보고 있다.

서동사(瑞洞寺) 대웅전 석가여래삼불좌상(釋迦如來三佛坐像)은 중앙 사바세계의 교주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측에 동방 만월세계 약사여래, 우측에 서방 극락세계 아미타여래를 배치한 공간적 삼세불 형식이다.

삼존 모두 접목조 방식으로 제작되었는데, 우선 본존 석가여래는 변형의 편단우견을 걸치고 팔각대좌 위에 다시 앙련의 연화좌를 놓고 그 위에 결가부좌하였다. 반구형의 머리는 따로 제작한 나발로 촘촘하게 부착하였고, 육계는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머리의 중앙과 정상에는 계주를 표현하였는데, 반달 형태의 큼직한 중앙계주가 인상적이다. 얼굴은 뾰족하게 처리하였고 턱, 코 뿌리에서 갑자기 솟은 돌출 코, 야무지게 앙다문 얇은 입술 등에서 개성적이면서 엄정한 인상을 준다.
역3자형의 귀는 다소 추상적이며, 상하각의 골을 길게 파내어 특징적이다. 이러한 귀의 표현은 조각승 운혜가 즐겨 사용했던 특징이기도 하다. 착의형식은 오른쪽 어깨를 살짝 덮은 변형의 편단우견이며, 두터운 옷 깃 주름을 지나치게 치켜세워 강조하였는데, 이것이 신체와 동떨어져 별개의 옷을 걸친 듯 다소 부자연스럽고 움츠린 듯 보이게 하는 요소이다.  그러나 상체는 불필요한 주름들을 최대한 배제하여 단순화시킨 반면, 하체는 입체적이고 탄력적인 주름으로 율동감 넘치게 조각하여 의도적인 대조를 통한 시각적 장애를 감소시켜준다. 여기에 다시 군의의 끝단을 율동감 있는 꽃잎 모양으로 멋을 내어 상체의 단조로움을 보완하였다.
특히 왼쪽 무릎 부근에 형성된 이중의 큼직한 주머니 모양의 주름과 왼쪽 측면의 폭 좁은 Ω형태로 마무리 한 주름이 특색이 있다. 수인은 항마촉지인을 결하였고, 손바닥에는 정(井)자 형태의 손금을 나타내었다.
무릎의 부메랑같이 표현된 주름을 중심으로 물결치듯 입체적으로 표현한 주름과 정(井)자형 손금은 대부분의 운혜조각에서 나타나고 있어 하나의 표식처럼 되고 있다. 좌협시 약사불상과 우협시 아미타불상은 엄지와 중지를 맞댄 수인을 좌우대칭으로 표현하였고, 착의는 두 장의 대의를 걸친 이중 착의법으로 표현하여 본존불과의 차이를 두었다.
아미타불상은 엄지와 중지를 둥글게 맞댄 하품중생인을, 약사불상은 아미타불상과 좌우 손의 위치만 달리하여 왼손바닥 위에 약사불의 상징인 조그마한 약호를 올려 약기인(藥器印)을 취하였다. 두 불상의 손가락은 본존불상에 비해 길고 섬려하며, 손바닥에는 본존불과 마찬가지로 정(井)자 형태의 손금을 나타내었다.
불의(佛衣)는 본존불과 마찬가지로 옷 깃을 지나치게 두텁게 표현하여 다소 어색한맛이 있으나 전반적인 존상의 품격을 저해하거나 관상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는 아니다. 특히 이곳 삼불형식에서 본존 편단우견, 좌우협시 이중착의로 차별을 둔 것은 17세기 삼불형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현방식이다.
이 삼불좌상은 상호나 신체의 표현 등에서 수조각승 운혜(雲惠)의 특색 있는 조각적 경향도 잘 드러나고 있다. 특히 현존하는 운혜(雲惠)의 작품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으로 17세기 불상조각 연구와 개금중수 과정을 이해하는데 하나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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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사(瑞洞寺)는 화원면 금평리 573번지 사동(寺洞)마을의 운거산(雲居山)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대흥사의 말사이다.사동마을은 서동사가 있어 ‘절골’로 부르며 구전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피난민이 서동사에 대피해와 이곳의 울창한 칡넝쿨이 사람들을 보호해 주었다고 하며, 1730년 무렵 목관(牧官) 강필경(姜弼慶)이 부임해와 동헌에 북통을 만들 때 칡넝쿨이 진상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 때문인지 서동사에는 오래전부터 내려온 칡 북이 있어 매우 흥미롭다. 원통형의 나무에 구멍을 뚫고 양쪽에 가죽을 데어 만든 이 북은 나무의 원형을 따라 만든 탓인지 북의 모양이 다소 삐뚤어진 타원형의 모습을 하고 있다. 지름이 약 50cm 가량인 이 칡 북은 나무의 안쪽을 파고 만든 나무라고 하여 굉장히 큰 칡 나무로 만들어 졌음을 짐작하게 한다.
서동사의 창건과 관련 887년 무렵 신라 진성왕 때 최치원이 창건했다고 하나 이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 없으며 현재의 유적과 유물로 볼 때는 조선시대 후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선시대 후기 이절의 역사는 절에 보관되었던 범자다라니경(梵字陀羅尼經)및 1870년(고종7)의 <서동사중수서>를 통해 연혁을 살펴볼 수 있다. 다라니경판은 1858년(철종9)에 만들어졌는데 끝부분에 보면 월여(月如)스님이 1858년 9월 화원목장(花源牧場)의 서동사에서 수명과 복덕을 기원하는 「다라니경」을 조성, 간행한 것으로 되어있다.
19세기 후기에 들어와서는 <서동사중수서>를 통해 1870년(고종7)당시 대웅전의 대대적인 보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근래에 들어와서는 1924년, 1945년과 1946년에 청학스님이 대웅전을 중수했다.
현재 서동사는 대웅전·종각·요사 건물과 함께 최근 복원된 누각 등이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약간 경사진 지형을 3단으로 정지하고 단에 대웅전과 요사를 배치했다. 이밖에 경내에는석조와 용왕상이 있으며 전에는 오층석탑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없어졌다고 한다.
절에는 또한 <상용권공문(常用勸供文)>이라는 책이 전한다. 책 끝부분에 1849년(현종15)에 해당하는 연도가 적혀있어 <범자다라니경목판>보다 시기가 빠른 고서라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서동사 대웅전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174)
대웅전은 팔작지붕에 앞면 3칸, 옆면 2칸의 단층 전각으로 지붕은 익공양식의 맞배지붕으로 위에 한식기와를 얹었으나 막새기와는 사용하지 않았다. 내부는 통칸으로 우물마루를 깔았다. 기둥은 윗면이 평평한 막돌 초석 위에 원통형 두리기둥을 세웠으며 기둥위로는 주두(柱頭)를 얹고 창방을 걸었다. 조선 후기에 지어진 뒤 그동안 여러 차례의 중수가 있었으며 최근에는 1990년에 보수한 바 있다.
대웅전 안에는 목조삼세불상과 관음상 및 삼세후불탱화, 칠성탱화, 신중탱화, 산신도 등의 불화 그리고 중종과 1879년 중수 때 감역을 맡았던 최명륜의 영정이 있다.
삼세불상은 가운데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가 협시하고 있으며, 조선시대 후기에 봉안된 것으로 보인다. 불화는 근래에 조성된 것이다.

그밖에 안에는 <서동사중수서>를 비롯해 <서동사중수시주질>, <서동사노전시주질>, <제서동사> 등의 현판이 걸려 있다. <서동사중수시주질>은 끝부분의 ‘갑자‘라는 간지로 보아 1924년의 대웅전 중
수를 기념하며 적은 듯하고 <서동사노전시주질>역시 간지는 지워져보이지 않지만 그 무렵의 노전 중수를 기념한 것으로 보인다.
<제서동사>는 천종의(千鍾宜)가 서동사에 대해 읊은 시문으로 ‘정묘’라는 간지로 보아 1927년에 현판을 새긴 듯하다. 또한 <각사찰질>, <각부날질> 등 1950년의 중수를 기념한 현판도 있다.

*참고문헌
해남군의 문화유적길라잡이(김승기), 1986. 해남, 정윤섭 향지사, 1997. 해남군사, 해남의얼, 해남의문화유산, 땅끝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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