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찬도약! 살맛나는 으뜸해남

두륜산권

두륜산권 기본코스

  1. 출발해남읍
  2. 고산윤선도유적지
  3. 두륜산케이블카
  4. 두륜산대흥사(일지암)
  5. 고정희 생가
  6. 김남주 생가

코스안내

두륜산권의 기본 탐방코스는 당일 약5시간 30분 정도 소요 되는 코스이다. 두륜산권은 해남의 영봉이며 여덟개의 높고 낮은 연봉으로 이루어진 규모 있는 산 두륜산(703m)을 중심으로 학문과 예술의 도량도량인 대흥사와 600년 종가 고택인 녹우당이 자리한다. 주된 주제는 조선시대 시가문학과 현대문학및 한국 불교역사를 만날 수 있는 코스이며. 천년고찰 대흥사에서는 한국 불교문화역사를 이해하며 현판을 통한 원교이광사와 추사김정희의 만남, 일지암의 다성 초의선사와 다산정약용의 만남등 각종 명필들의 이야기와 형판글을 만날 수 있으며, 명승 두륜산 정상에 위치한 북암의 마애여래좌상은 불교조각예술의 아름다움을 한층 더 느끼게한다. 특히 두륜산의 사계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두륜산 케이블카의 풍광은 해남의 자연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코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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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별 관광지

고산윤선도유적지 사진
고산윤선도유적지
이 곳은 조선조의 문신(文臣)이요, 국문학상 대표적인 시조시인으로 일컫는 고산윤선도尹善道(1587-1671) 선생의 유적지로 녹우당이 있다. 600년 전통을 이어온 해남윤씨 어초은파의 종가고택인 녹우당은 덕음산을 뒤로 우리나라 최고의 명당자리중의 하나로도 알려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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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륜산케이블카 사진
두륜산케이블카
두륜산 고계봉정상에 설치된 두류산 케이블카에 오르면 난대수림 및 소사나무 숲길 따라 남도의 사계와 다도해를 한눈에 감상 할수 있다. 국내 최장거리를 자랑하는 두륜산케이블카는 서 남해 다도해를 한눈에 바라볼수 있는 곳으로 맑은날은 제주도 한라산까지 보이는 멋진 자연 경관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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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륜산대흥사(일지암) 사진
두륜산대흥사(일지암)
대웅전에서 700m가량 정상 쪽으로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면 조선후기 대표적 선승가운데 한 사람이며 우리나라 다성(茶聖)으로 추앙받는 초의선사가 그의 ‘다선일여(茶禪一如)’사상을 생활화하기 위해 꾸민 다원(茶苑)인 일지암이 있다. ‘일지암’편액이 붙어 있는 정자는 1980년 한국다인회 회원들이 다도의 중흥조 초의가 기거했던 일지암을 기념하기 위해 복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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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희 생가 사진
고정희 생가
여성운동가 고정희는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에서 태어난 시인이자 여성운동가로 삼산면 송정리는 고정희가 스무살 무렵까지 그녀가 문학소녀로서의 꿈과 희망을 키우던 마을이다. 이러한 뿌리가 그의 초기시에 향토적 서정이 짙은 시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한 뒤 1975년 시인 박남수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연가》《부활과 그 이후》를 발 표하며 문단에 데뷔하였다. 허형만·김준태·장효문·송수권·국효문 등과 ‘목요회'동인으로 활동하였고,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여성문학인위원회 위원장, 시창작분과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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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주 생가 사진
김남주 생가
김남주 생가는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 에 위치하고 있다. 삼산면 봉학리 에서 이땅의 전형적인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70년대 격변의 시기에 전남대 영문과에 입학 3선개헌 반대, 교련반대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70년대 유신독재체제와 맞서 칼날같은 시를 쏟아내고 민주주의로 향하던 80년대를 옥중에서 보내면서도 '나의 칼 나의 피', '조국은 하나'등의 옥중시집을 발표해 현실비판의 당당한 문학지평을 열어왔다. 그의 길지 않은 삶과 문학의 제적에는 70, 80년대 우리 정치사회사의 굴곡과 음영이 그대로 새겨져 민족문학의 큰별로 낮고 어둡게 살아가는 민중들의 앞길을 밝혀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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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륜산권 역사 문화코스

  1. 출발고산윤선도유적지
  2. 두륜산대흥사(일지암)
  3. 금쇄동(수정동, 문소동)
  4. 해남 방축리 고인돌
  5. 해남 연정리 고인돌
  6. 고정희 생가
  7. 김남주 생가
  8. 정운장군사당
  9. 성산만의총

코스안내

두륜산권의 역사탐방코스는 당일 6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 코스로 문학과 자연이 함께하는 역사 탐방형 코스이다. 주되 주제는 해남의 선사시대문화와 조선시대 불교문화 및 시가문학과 건축, 현대문학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의 인물 들과 역사를 만날 수 있으며 정유재란 당시의 해남사람들의 이야기와 충혼을 알 수 있는 코스 이기도 하다. 특히 해남의 너른 들판과 명승 두륜산 대흥사 천년의 역사속에서는 재미있는 불교문화재와 불교예술품을 감상하며 그것에 얽힌 다양한 설화들을 만날 수 있는 코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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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별 관광지

고산윤선도유적지 사진
고산윤선도유적지
이 곳은 조선조의 문신(文臣)이요, 국문학상 대표적인 시조시인으로 일컫는 고산윤선도尹善道(1587-1671) 선생의 유적지로 녹우당이 있다. 600년 전통을 이어온 해남윤씨 어초은파의 종가고택인 녹우당은 덕음산을 뒤로 우리나라 최고의 명당자리중의 하나로도 알려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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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륜산대흥사(일지암) 사진
두륜산대흥사(일지암)
대웅전에서 700m가량 정상 쪽으로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면 조선후기 대표적 선승가운데 한 사람이며 우리나라 다성(茶聖)으로 추앙받는 초의선사가 그의 ‘다선일여(茶禪一如)’사상을 생활화하기 위해 꾸민 다원(茶苑)인 일지암이 있다. ‘일지암’편액이 붙어 있는 정자는 1980년 한국다인회 회원들이 다도의 중흥조 초의가 기거했던 일지암을 기념하기 위해 복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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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쇄동(수정동, 문소동) 사진
금쇄동(수정동, 문소동)
해남읍 현산면 에 위치한 금쇄동 윤선도 유적은 조선중기 문신이자 시인인 고산 윤선도(1587~1671 )의 문학 처이다. 고산은 이곳 금쇄동에 은둔처를 정하고 「신중신곡」과 「금쇄동기」등의 문학작품을 저술하였으며, 자연을 이용해 연못과 정자 등을 조영한 고산의 대표적인 원림지이기도 하다. 금쇄동은 고산분지형의 산 정상으로 산성의 동 북편은 고산이 「금쇄동기」에서 22개의 비경을 노래한 지명과 어울려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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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방축리 고인돌 사진
해남 방축리 고인돌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 부르며,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 놓은 탁자식과, 땅 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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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연정리 고인돌 사진
해남 연정리 고인돌
화산면 연정리 고인돌은 삼봉산 기슭의 평탄한 대지 위에 국도 13호선에서 50m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고인돌 주위에는 고목의 숲이 우거져 있으며 동쪽 산기슭에 석정마을이 위치하고 있다. 연정 고인돌의 배치는 남쪽 35m, 동서 20m의 범위 안에서 삼각형에 가까운 군집을 이루고 있으며, 방향은 계곡과 산줄기의 방향인 남북방향으로 군집되어 있다. 큰 고인돌을 중심으로 작은 고인돌들이 배치된 형태를 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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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희 생가 사진
고정희 생가
여성운동가 고정희는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에서 태어난 시인이자 여성운동가로 삼산면 송정리는 고정희가 스무살 무렵까지 그녀가 문학소녀로서의 꿈과 희망을 키우던 마을이다. 이러한 뿌리가 그의 초기시에 향토적 서정이 짙은 시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한 뒤 1975년 시인 박남수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연가》《부활과 그 이후》를 발 표하며 문단에 데뷔하였다. 허형만·김준태·장효문·송수권·국효문 등과 ‘목요회'동인으로 활동하였고,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여성문학인위원회 위원장, 시창작분과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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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주 생가 사진
김남주 생가
김남주 생가는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 에 위치하고 있다. 삼산면 봉학리 에서 이땅의 전형적인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70년대 격변의 시기에 전남대 영문과에 입학 3선개헌 반대, 교련반대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70년대 유신독재체제와 맞서 칼날같은 시를 쏟아내고 민주주의로 향하던 80년대를 옥중에서 보내면서도 '나의 칼 나의 피', '조국은 하나'등의 옥중시집을 발표해 현실비판의 당당한 문학지평을 열어왔다. 그의 길지 않은 삶과 문학의 제적에는 70, 80년대 우리 정치사회사의 굴곡과 음영이 그대로 새겨져 민족문학의 큰별로 낮고 어둡게 살아가는 민중들의 앞길을 밝혀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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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장군사당 사진
정운장군사당
임진왜란 때 충신인 충장공 정운 장군의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각이다. 충장공 정운 장군은 조선 중기 무신으로 선조 3년(1570)에 과거에 급제하여 웅천현감 등을 지냈다.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 장군의 지휘 아래 큰 공을 세웠으며 9월 부산포해전에서 전사하였다. 이 각은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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