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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건조물

서동사 대웅전
주소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금평리 571
문의문화예술과 문화유산팀 : 061-530-5226 / 관광안내 : 061-532-1330  
관광안내  
 

소개

서동사는 운차산 기슭에 있는 절로 지은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고, 다만 통일신라 진성여왕(재위 887∼896)대에 최치원이 지었다고 전하고 있다.
임진왜란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불탔으나 대웅전만은 칡뿌리 등이 건물을 감싸고 있어 화를 면하였다고 하여 당시에는 갈천사로 불렀다고 한다.

현재는 대웅전과 요사채만 남아 있다.
대웅전은 고종 7년(1870)에 고쳐 세웠는데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인 익공 양식으로 꾸몄다. 창호는 가운데 칸에는 4짝 빗살문을, 양쪽 끝칸에는 쌍여닫이문을 달았다.

건물 안쪽은 통칸으로 마루를 깔았고 가운데 뒤편으로 삼존불을 모셨으며, 불단 위에는 지붕 모형의 닫집을 달아 놓았다.
해남군 화원면 운차산(雲車山) 기슭에 위치한 서동사는 현재 대웅전과 요사채만 있는 조그마한 사찰이다.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고 다만 신라 진성여왕(887∼896년)대에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 선생께서 창건한 사찰로 전해오고 있다.
그후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대부분 건물이 불탔으나 대웅전만은 칡뿌리 등이 건물을 감싸고 있어 화를 면하였다고 하며 이로 인해 당시에는 갈천사(葛天寺)로 불리었다고 한다. 그후 대웅전은 고종 7년(1870)에 의철, 진일, 정기스님 등이 중수하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 단층전각의 맞배지붕으로 기와를 얹혔으며 막새기와는 사용하지 않았다. 내부는 통간(通間)으로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중앙 뒷쪽으로 3존불을 안치하였다. 윗면이 평평한 대형 막돌주출돌 위에 원형(일부는 민흘림) 기둥을 세웠으며 기둥위로는 주두를 얹고 창방을 걸었다. 창방 위로는 기둥 사이마다 중앙에 3소루 꽃받침을 1구씩을 배치하였다.

공포는 기둥 윗몸에서부터 쇠서 3개를 낸 3익공식으로 아래에서 위로는 초각된 연봉(蓮峯)이 올려져 있다. 기둥 안쪽으로는 초각된 보아지를 두었다.

가구는 전후 평주위에 대들보를 걸고 그 위에 동자주(童子柱)를 놓아 종량을 얹힌 평량 5가구이다. 양 측면의 중심 기둥으로부터 대량위로 팔작집에서 가설되는 충량을 걸어 특히 주목된다. 천장은 종량상부로는 우물천장을 가설하고 나머지는 빗천장으로 꾸몄다. 3존불단 위로는 닫집을 가설하였다.

창호는 중앙칸에는 4분합 빗살문을, 양 협칸으로는 쌍여닫이 띠살문을 달았다. 처마는 전·후면 겹처마이다.

문화유산 정보

종 목 :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74호  
명 칭 : 서동사대웅전 (瑞洞寺大雄殿)  
분 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불전  
수량/면적 : 1동 /486㎡
지정(등록)일 : 1990.02.24
소 재 지 : 전남 해남군  화원면 절골길 244
시 대 :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 서동사
관리자(관리단체) : 서동사

문화유산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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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일 1990.2.24. 소재지 전남 해남군 화원면 절골길 244
명칭 서동사 대웅전 시대 조선시대
유형 향토유적  소유자 서동사
수량/면적   관리자 문화예술과 문화유산팀 : 061-530-5226 / 관광안내 : 061-532-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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