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찬도약! 살맛나는 으뜸해남

달마고도 역사

달마고도(達摩古道) 탄생

선종을 창시한 달마대사는 입적 후 신발 한짝들고 어디로 갔을까요?.
해발489m인 달마산은 12km의 능선에 1만개의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데 모두 부처님의 형상을 띠고 있습니다.
신발 한짝 들고 남쪽으로 떠났다는 달마대사, 1500년 전 그가 한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이곳 산에 머물렀다 해서 산 이름이 달마산이 됩니다. 이러한 산 이름 때문에 중국인들은 고려 이전부터 달마산을 신성시했습니다.
달마고도란 고려 때 달마산 둘레에 건립됐던 12개 암자를 연결한 암자순례 코스로 달마대사가 걸었던 옛길을 의미합니다.

도량의 길에서 민초의 길로

달마대사가 달마산에 도착했던 해로부터 300년 후인 749년, 인도에서 출발한 배가 땅끝마을에 나타납니다. 배에는 경전과 금인, 검은 돌이 실려 있었는데 문득 검은 돌에서 소 한 마리가 뛰쳐나오더니 배에 있던 경전과 불상을 싣고 달마가 걸었던 숲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숲길을 한참 걷던 소가 커다란 울음소리를 내며 누웠던 곳에 미황사가 들어섭니다.
미황사의 '미'는 소의 아름다운 울음소리, '황'은 금인의 황홀한 색에서 따와 붙였다고 하며 소가 걸었던 길은 달마고도 4코스에 해당됩니다.
달마대사가 걸었고 아름다운 소가 걸었던 옛길에는 고려시대 12개 암자가 차례로 들어섭니다. 조선시대에는 북평면 이진으로 도착한 제주도 말이 이 길을 걸었고 봇짐장수도, 시집가는 신부의 가마도, 5일장을 보러가는 할아버지도 이 길을 이용했습니다.

달마고도의 쇠퇴

달마산 능선 둘레에 12개 암자가 있었던 미황사는 조선시대 서산대사의 제자 소요대사가 머물면서 더욱 번창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 후 1892년, 중창불사를 위한 군고패가 스님들을 중심으로 결성됩니다. 군고패는 여러 고을을 돌며 중창불사 시주를 받았는데 이젠 저멀리 완도 청산도까지 가게 됩니다. 그런데 청산도로 향하던 중 큰 폭풍우를 만나면서 스님 1명 외에 40명이 수몰되는 참사를 맞습니다. 이로인해 미황사는 쇠퇴하고 더불어 숲길 12개 암자도, 숲 옛길도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달마고도의 부활

1989년, 속가 나이 23세의 젊은 스님이 미황사에 옵니다. 스님의 등에는 언제나 지게가 얹혀있었습니다.
지게로 땔감을 나르고 돌담을 쌓으며 쇠락한 사찰을 중건한 스님을 사람들은 지게스님이라 불렀습니다.
세월이 흘러 지게 스님은 미황사 주지가 됩니다. 주지가 된 금강스님은 흔적만 남은 달마산 옛길을 걸으며 태고의 길 복원을 꿈꿉니다.
그리고 당시 전남도지사였던 이낙연 전 총리를 만나 그꿈을 말합니다.
2017년 2월, 지게를 진 인부들의 행렬이 달마산 능선으로 이어지기 시작합니다. 인부들의 손에는 삽과 호미, 곡괭이와 도시락이 들려있었지요. 매일 40여 명, 총인원 1만명의 인부들 손으로만 길을 닦는데 장장 9개월이 걸렸습니다.
달마산 7부 능선을 따라 싸목싸목 걷는 길인 달마고도는 2017년 11월 대한민국에 그 속살을 드려냅니다. 금강스님은 달마대사가 걸었던 옛길이란 의미로 '달마고도達摩古道'라 명명했습니다.

남쪽 금강산 '달마산'

'달마산은 백두산에서 시작한 백두대간이 지리산을 넘어 월출산을 지나 마지막 머문곳으로 호남정맥의 끝입니다.
해발489m로 높지않은 산이지만 산세가 웅장해 예로부터 남쪽 금강산으로 불렀습니다.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 동백꽃, 가을에는 산 정산까지 끝없이 펼쳐진 억새가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룹니다.
또 불썬봉(달마봉)을 중심으로 관음봉(434m), 떡봉(422m), 도솔봉(418.2m)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길이는 약 12km입니다.
산 정상 능선에는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데 바위 하나하나의 모양이 부처형상을 띠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성함 때문에 달마대사가 머물 곳으로 여겨 달마산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달마고도는 달마산의 둘레길 입니다.

소나무에 깃든 법정의 무소유

무소유의 삶을 살았던 법정, 입적 전날 까지도 꽃과 대화를 나눴던 법정은 해남 출신입니다.
입적하기 하루 전날 미황사 금강 주지스님이 보낸 동백꽃과 매화 꽂잎을 만지며 "올라오느라 고생했다"고 했던 법정스님.
2010년 3월 금강스님은 법정스님 다비식 후 남은 재를 가져와 달마고도 1구간 소나무 아래에 정성껏 모십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월사금 때문에 울어야 했던 소년 법정의 무소유의 혼이 달마고도에서 고향 해남과 조우한 것입니다.
그래서 달마고도 1구간을 무소유의 길, 법정의 길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달마고도 역사 산 이미지
공공누리 마크(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 담당부서담당부서담당자 문의전화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어느 정도 만족하셨습니까?

만족도 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