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 고산문학의 산실 - 수정동과 금쇄동
고산은 자신의 은둔생활을 철저히 자연 속에 몰입시킨다. 그가 이러한 자연 속에서 자신의 세계로 조영한 곳이 수정동과 금쇄동이다. 고산문학의 주된 배경은 자연이다.이중 어촌을 배경으로 한 것이 보길도에서 지었던 어부사시사이고 산중인 임천(林泉)의 자연을 배경으로 한 것이 현산면 구시리 금쇄동에서 지었던 「산중신곡」과 「금쇄동기」라고 할 수 있다.
고산은 크게 천연의 순수자연과 순수자연에 인공을 가한 조형자연을 선호의 대상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고산이 보길도에서 부용동원림을 조영하고 현산면에 금쇄동원림, 수정동원림 등을 경영한 것은 이러한 조형자연의 구축이라고 할 수 있다.
고산의 대표작인 산중신곡은 이곳 금쇄동과 수정동 그리고 문소동 등에서 원림을 경영하며 산거생활의 흥취를 노래한 것이어서 고산의 중요한 문학처이다.
고산은 이곳에서 은거생활을 하며 산중인 임천(林泉)의 자연을 배경으로 한 작품 산중신곡 19수와 속 산중식곡 2수, 기타 5수 등 모두 26수의 시가를 남긴다. 또 금쇄동기에 22개의 지명을 남기는데 모두 그에 합당한 의미를 붙여 이름을 지었다.
* 고산의 묘와 이의신 이야기
고산의 묘와 관련해서는 고산과 인척관계였던 이의신과 관련한 전설이 있다. 그가 잡은 묘터는 당시 유명한 지관이었던 이의신이 잡아놓은 터였다고 한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풍수리지에 능한 이의신은 이 터를 잡고 묘자리로 쓰기 위해 나귀를 타고 이곳을 왕래했다. 그런데 이를 이상히 여긴 고산이 따라가 보니 과연 명당자리였다. 그래서 어느날 몰래 이 묘자리에 물을 부어 놓아 물길(수맥)이 있는 줄 알고 묘자리를 포기하도록 꾀를 써 묘를 차지했다는 이야기다.
이의신은 조선왕조실록에도 자주 등장하는 유명한 풍수가로 그가 유명한 지관이 된 이야기가 마산면 송석리 일대에서 생긴 전설로 전해 내려온다.
* 오우가(五友歌) - 고산 윤선도
내 벗이 몇인가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등산에 달 오르니 그 더욱 반갑구나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水
구름빛이 맑다하나 검기를 자주한다
바람 소리 맑다 하나 그칠 때가 많은도다
맑고도 그칠 때 없기는 물뿐인가 하노라
石
꽃은 무슨 일로 피면서 쉬이지고
풀은 어이하여 푸르는 듯 누르나니
아마도 변치 않음은 바위뿐인가 하노라
松
더우면 꽃이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소나무야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느냐
지하의 뿌리 곧은 줄을 그것으로 아노라
竹
나무도 아닌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 시키며 속은 어이 비었느냐
저렇고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月
작은 것이 높이 떠서 만물을 다 비치니
밤중의 광명이 너만한 이 또 있느냐
보고도 말 아니하니 내 벗인가 하노라
*참고자료 : 땅끝해남, 고산유고, 고산유선도, 해남의 문화유산, 해남 정윤섭, 향지사, 1997.해남윤씨 500년요람지 녹우당등.
고산은 자신의 은둔생활을 철저히 자연 속에 몰입시킨다. 그가 이러한 자연 속에서 자신의 세계로 조영한 곳이 수정동과 금쇄동이다. 고산문학의 주된 배경은 자연이다.이중 어촌을 배경으로 한 것이 보길도에서 지었던 어부사시사이고 산중인 임천(林泉)의 자연을 배경으로 한 것이 현산면 구시리 금쇄동에서 지었던 「산중신곡」과 「금쇄동기」라고 할 수 있다.
고산은 크게 천연의 순수자연과 순수자연에 인공을 가한 조형자연을 선호의 대상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고산이 보길도에서 부용동원림을 조영하고 현산면에 금쇄동원림, 수정동원림 등을 경영한 것은 이러한 조형자연의 구축이라고 할 수 있다.
고산의 대표작인 산중신곡은 이곳 금쇄동과 수정동 그리고 문소동 등에서 원림을 경영하며 산거생활의 흥취를 노래한 것이어서 고산의 중요한 문학처이다.
고산은 이곳에서 은거생활을 하며 산중인 임천(林泉)의 자연을 배경으로 한 작품 산중신곡 19수와 속 산중식곡 2수, 기타 5수 등 모두 26수의 시가를 남긴다. 또 금쇄동기에 22개의 지명을 남기는데 모두 그에 합당한 의미를 붙여 이름을 지었다.
* 고산의 묘와 이의신 이야기
고산의 묘와 관련해서는 고산과 인척관계였던 이의신과 관련한 전설이 있다. 그가 잡은 묘터는 당시 유명한 지관이었던 이의신이 잡아놓은 터였다고 한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풍수리지에 능한 이의신은 이 터를 잡고 묘자리로 쓰기 위해 나귀를 타고 이곳을 왕래했다. 그런데 이를 이상히 여긴 고산이 따라가 보니 과연 명당자리였다. 그래서 어느날 몰래 이 묘자리에 물을 부어 놓아 물길(수맥)이 있는 줄 알고 묘자리를 포기하도록 꾀를 써 묘를 차지했다는 이야기다.
이의신은 조선왕조실록에도 자주 등장하는 유명한 풍수가로 그가 유명한 지관이 된 이야기가 마산면 송석리 일대에서 생긴 전설로 전해 내려온다.
* 오우가(五友歌) - 고산 윤선도
내 벗이 몇인가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등산에 달 오르니 그 더욱 반갑구나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水
구름빛이 맑다하나 검기를 자주한다
바람 소리 맑다 하나 그칠 때가 많은도다
맑고도 그칠 때 없기는 물뿐인가 하노라
石
꽃은 무슨 일로 피면서 쉬이지고
풀은 어이하여 푸르는 듯 누르나니
아마도 변치 않음은 바위뿐인가 하노라
松
더우면 꽃이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소나무야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느냐
지하의 뿌리 곧은 줄을 그것으로 아노라
竹
나무도 아닌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 시키며 속은 어이 비었느냐
저렇고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月
작은 것이 높이 떠서 만물을 다 비치니
밤중의 광명이 너만한 이 또 있느냐
보고도 말 아니하니 내 벗인가 하노라
*참고자료 : 땅끝해남, 고산유고, 고산유선도, 해남의 문화유산, 해남 정윤섭, 향지사, 1997.해남윤씨 500년요람지 녹우당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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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예관광팀 진정연 ☎ 061-530-5061-530
- 2018-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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