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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건조물

표충사(대흥사)
주소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
문의문화예술과 문화유산팀: 061-530-5250/ 해남 관광안내: 061-530-5915 / 061-532-1330  
관광안내  
 

소개

전라남도 기념물 제19호인 표충사는 오늘날 대흥사의 사격(寺格)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건물로 이곳에는 임진왜란 때 국란극복에 공훈을 세운 서산대사와 그의 제자 사명과 처영의 영정을 봉안하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이 일대에는 표충사 외에 조사전ㆍ의중당ㆍ요사ㆍ표충비각ㆍ강례재ㆍ호국문 등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표충사는 1788년(정조12)에 조정으로부터 서산대사를 기리는 ‘표충사(表忠祠)라는 사액을 받아 지금의 터에 건물을 지었다. 금자로 쓴 ‘표충사’라는 편액글씨는 정조대왕의 친필로 전해지며 함께 걸려있는 ‘어서각(御書閣)’이라는 현판 글씨는 추사의 제자 신관호(申觀浩, 1811~1884)가 쓴 것이라고 한다.

*표충사 건물
표충사는 사당으로 지은 건물이므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앞면 3칸, 옆면 3칸으로 되어있다. 안에는 서산대사ㆍ사명대사 ㆍ뇌묵 처영대사 세 스님의 진영이 봉안되어 있고, 서산대사와 사명대사의 교지현판과 서산대사화상당명병서 현판이 걸려있다
표충사는 임진왜란 때 승병을 중심으로 창의하여 왜적을 물리친 서산대사 휴정·사명당유정·뇌묵당 처영 등 3대사의 충의를 추모하기 위하여 1789년(정조13)에 건립한 사우로 동년에 국가로부터 사액주)1(賜額)을 받았다.
표충사는 사찰 경내에 있는 유교형식의 사당으로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독특한 경우라 할 수 있다.

*표충사 건물 좌우에는 표충비각(表忠碑閣)과 조사전이 있다.
오른편에 있는 표충비각은 팔작지붕에 앞면 2칸, 옆면 2칸 크기이며 안에는 홍문관 제학 서유린(徐有麟, 1738~1802)이 지은 서산대사표충사기적비와 건사사적비이다.,
그리고 1979년에 세운 한글판 기적비가 있다. 조사전에는 6대조사 진영 1폭과 5대조사 진영 2폭이 모셔져 있다.

표충 비각의 비중  1기는 ‘표충사건사사적비(表忠祠建祠事蹟碑)’로 사각형 비좌에 비신과 이수를 갖추었다. 건립연대는 「聖上十六年壬子五月日, 西山六世法孫蓮潭有一謹撰, 應雲登旿謹書」란 내용으로 보아 정조 16년(1792)이며, 찬자는 연담유일, 글씨는 응운등오가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다른 1기는 서산대사표충사기적비로 사각형 비좌에 비신과 사각형의 지붕돌을 올렸다. 건립연대는 비신측면에 「崇禎紀元後三辛亥月日立」이란 명문으로 보아 정조 15년(1791)임을알 수 있다.

청허당 휴정은 임진왜란 때 80노구를 이끌고 구국운동의 선봉에 나서 활약한 승병대장으로 선조는「국일대선사교도총섭부종수교보제등계존자」란 긴 호를 내렸다. 표충사는 정조12년(1788) 사액을 받아 서산대사의 7세 법손인 천묵에 의해 건립되었으며, 나라에서는 매년 예관과 헌관을 보내 관급으로 제향하게 했다.
표충사에 있던 서산대사의 유물들은 1976년 서산대사유물관을 건립하여 대사의 의발과 임진왜란 당시 의병으로 출병할 때에 사용하였던 병기 등을 전시하고 있으며, 정조대왕이친히 쓴 금자병풍 등 많은 관련 유물을 보관하고 있다.

정조 임금이 글씨를 쓰고 절에 하사한 서산대사화상당명은 모두 6폭으로 되어 있다. 4폭은 정조가 금자(金字)로 쓴 것이고 좌우의 2폭에는 매화와 대나무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밖에 표충사 왼쪽에 노전인 강례재(講禮齋)와 그 바깥에 1층 누각의 의중당(義重堂)이 있고, 오른쪽에는 보련각,앞쪽으로는 중문인 예재문(禮齋門)과 정문인 호국문이 있다.

서산대사는 입적하면서 제자들에게 내가 죽은 뒤에 의발(衣鉢)을 두륜산 대흥사에 전하여 제삿날에 재를 받게 하라고 부탁한다. 그는 두륜산은 모통이에 치우쳐 있고 명산은 아니지만 기이한 화초가 언제나 아름답고 옷감과 곡식이 넉넉한 곳이며 왕의 교화가 제대로 미치기 힘든 먼 곳 이지만 어리석고 아둔한 풍속을 깨우칠 수 있으며 처영 등 여러 제자들이 남방에 있으므로 종통(宗統)이 돌아갈 곳은 바로 대흥사라고 말한다.

이에 따라 제자들은 삼년상을 치른 후 서산대사의 유물을 챙겨 대흥사로 모여들었다. 먼저 영잠(靈岑)대사가 1607년(선조40) 스승의 유품인 금의(錦衣)와 벽옥발(碧玉鉢)등을 절로 가지고 왔으며 이듬해 기일(忌日)에는 이 유물들을 받들어 놓고 재를 올렸다. 이어 진영을 모시는 영각을 짓고 1631(인조9)에는 당대의 명문장가 장유(張維)가 지은 서산대사의 비문을 새겨 비석을 세웠다. 그리고 1655년(효종6)에 묘향산에 있던 서산대사의 발우와 신발, 가사 등을 절로 가져 왔다고 한다.

이렇게 서산대사의 유품과 진영이 봉안되고 비석이 세워지면서 절은 서산의 문도들이 모이는 중심 사찰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이다. 이후 대흥사는 13대종사와 13대강사등 뛰어난 스님들을 배출하게 되며  이들은 모두 서산대사의 문도와 법손들이며  이들로 인해 대흥사는 호국불교와 차의 성지로 자리매김되게된다.

문화유산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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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일   소재지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
명칭 표충사(대흥사) 시대  
유형 향토유적  소유자  
수량/면적   관리자 문화예술과 문화유산팀: 061-530-5250/ 해남 관광안내: 061-530-5915 / 061-532-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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