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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치소마을 짐대와도지 과거에는 송지면 치소마을은 음력 정월 보름(초사흗날)에 당제(도지)와 짐대지를 지냈다.
뒷골에 있는 상당 도지터는 마을동복쪽 산중턱에 소나무와 산석을 이용하여 제단을 만들었는데 3m 폭으로 잎이 터져있는 네모난 신역(神域)을 높이 80cm, 푹 35-40cm의 돌담을 쌓고 안쪽 깊숙히 돌을 이용하여 재단석을 만들었다.
제단식 위에는 정화수와 귤, 사과등 제물이 놓인다. 제신역 돌담 주위는 왼새끼에 백지를 메단 금줄이 둘러져 있다.
하당 사장터에 있는 짐대는 마을이 꿩형국의 치소라 꿩잡는 매가 못들어오게 6-7m의 소나무장대 위에 먹이를 물고 가는 오리를 나무로 깎아 올려 놓았다.

제일(祭日)은 정월 보름날이었으나 미황사에서 도지를 올린 후 부터는 초사흗날로 바꾸었다. 제관은 정월초에 생기복덕에 맞는 노인과 부녀를 뽑는데 이들은 3-4일 동안 문밖출입을 금하고 찬물로 목욕하며 제장을 청소하고 상당과 하당에 금줄을 쳐 놓는다.
제물을 밥 여러 그릇 떠놓고 제주(祭酒)과실을 차린 후 해 떨어지면 절 2번하고 축원 후 농사 잘되고 무병하라고 소지(燒紙)를 노인네, 동네사람, 지나가는 객 순으로 올린다. 제비(祭費)는 집집마다 조금씩 거두고 제가 끝난 후에는 동네회의 후 군물을 치고 샘굿을 하면서 저녁내내 막걸리 먹고 놀며 포수, 조리중이 웃기기도 한다.

짐대제는 마을의 깨끗한 사람이 밥상을 차려놓고 하당에서 소원을 빌기도하며 액운을 가져 가라고 짚으로 허수아비를 만들어 '허세완'을 마을앞 길가에 버려두기도 한다.
음력 정월 초이튿날에 당제와 짐대제를 지낸다. 예전에는 초사흗날에 모셨으나 5~6년전 부터 초 이튿날로 옮겼다. 당제는 뒷골에 있는 당터에서 지내고, 짐대제는 사장터에 있는 2개의 짐대 앞에서 지낸다.
당제는 마을에 있는 청주사 스님이 오셔서 모시며, 마을에서는 생기가 맞는 사람을 뽑아 스님을 돕는다.   스님은 뒷골 상당도지터에서 염불을 하고, 마을의 호주들 이름이 적힌 소지를 올린 후, 마을 사장게 짐대앞에서 다시 짐대제를 지낸다.
짐대제는 짐대 앞에 허새비(스님이 당제를 모시는 동안 마을 사람들이 만든다) 를 모시고, 주민들이 마련한 헌식상을 차린다. 헌식상앞에서 스님이 염불을 하고 나면 마을 굿패가 매구를 친다음 한바탕 논다.
한바탕 놀이가 끝나면 허새비에게 음식을 먹여 마을 밖으로 가지고 나가 버리고 오는데 이때 마을에서 가장 입담이 좋은 사람이 허새비에게 풍요와 마을 주민들의 무사, 외지에 나가 있는 출향인들의 안전을 비는 축원을 우스개 소리를 섞어 가면서 한다. 허새비를 버리고 돌아오는 길에는 입을 다물어야 한다.
청주사 스님이 모시기 전에는 미황사 스님이 오셔서 모셨는데 당시만 해도 심부름하는 사람 집에는 3일 전부터 황토를 깔고 출입을 삼갔으며. 미황사로 가서 스님을 모셔오고, 제물을 가지러 갈 때는 반드시 마을에 있는 나드렛보에서 목욕재계하고 갔다.

짐대는 마을에서 매년 음력 1월 2일 오후 5시경에 마을 뒷산에 있는 산신당에서 산신제를 지내고, 마을 앞에 있는 짐대에서 간단하게 제를 지낸다. 짐대는 외부로 부터 마을을 지켜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10여년 전 향우회에서 매를 청동으로 만들어 올려 놓았다.
참고문헌
  • 해남의 문화유적, 해남문화원, 1995.우리마을의 풍속, 해남문화원, 1996. 우리마을의 삶과 문화, 해남문화원 2011.
사진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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